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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특정관심사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상황이라면 가장 기본적이면서 확실한 답이 없는 고민일 것이다. 

'왜 나는 살고있는가'와 비슷할 수도 있다. 사랑하는 이유=살아가는 이유라면 지나치다고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누군가에게는 사랑이 살아가는 이유 중 하나일터이니 비약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다. 

 

연애라는 건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다! 

물론 이성에게 마음을 뺏긴 사람은 논리적 타당성과는 상관없이 상대와 내가 어떤 운명적인 연관관계를 갖고있다고 믿게된다. 

책에선 낭만적 운명론이라고 이야기하고있는데, 태어나서 몇십년 간을 떨어져서 지내온 서로 다른 행동 패턴을 가진 남녀가 마주쳐서 서로에 대해 호감을 가지게 될 때까지를 확률로 다져보면 천문학적인 숫자가 나오는데, 그 극히 희박한 확률이 현실에서 극적으로 이루어지고, 공유하는 환경이나 정서를 발견하는 것은 모두가 기쁨이기 때문이다. 그가 원하는 것이면 나도 원하고싶어지고, 그의 사소한 행동들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지는 않은지 관심이 곤두선다. 사랑한다고 말하고싶지만 전해지는 것은 기표일 뿐, 나의 불타는 기의는 온전히 전할 수 없음을 깨닫고, 사랑을 고백하는 사람은 시인이 된다. 상대가 고전주의적인 완전한 비례를 이룬 외모를 갖추지 않았어도 거기에 끌리는 이유는 그만의 독특한 불완전함이 나의 미적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연애를 하면서 항상 좋은 날만 있는 것도 아니다. 상대가 천사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나면 사소한 문제로 실망하고 다툰다. 채소가게 주인의 촌스러운 양말과 샌들은 너그럽게 이해하는 나는 애인의 구두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에 기어기 불만을 표시하고 만다. 틀어진 관계를 회복시키는 묘약은 웃음이다. 그 중에 둘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던지는 농담은 좋은 효과를 발휘한다. 

 

사랑이 운명적으로 시작되었듯, 이별도 운명적이다. 

사랑을 속삭이는 말과 몸짓이 언제부턴가 공허한 것 같은 인상을 받게되면서 불안한 관계가 시작된다. 

하지만 그 무엇으로도 그의 진심을 확인할 수 없다. 여전히 사랑한다고 말하고 겉으로 보기엔 남부러울 것 없는 연인이기 때문에. 

사랑을 확인하지 못해 토라지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약이 없다. '네가 토라지지 않게 내가 사랑해줄게'라는 말이 진심이든 아니든, 듣는 사람이 액면대로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그는 떠나고 나는 혼자가 된다. 나의 세계는 무너지고 인생은 보잘 것 없는 것이 되었다. 

다른 사람의 품에서 여전히 행복한 그에게 나의 고통을 알리고 죄책감을 깨닫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살이다. 벼랑 끝에 선 마음으로 자살을 시도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미수에 그쳤다. 시간과 함께 모든 것이 희미해지고, 나는 다른 사람에게 다시 호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사랑이란 건 살면서 피해갈 수 없어 받아들여야만 하는 운명같은 것일까. 괴로워하면서도 왜 사람을 사랑하게되고 빠져들어버리는 걸까. 헤어진 후에는 영원히 아파할 것 같다가도 다른 사랑을 찾아서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고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일까. 그리고 또다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있는 것일까. 아무리 물어봐도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 걸 알면서도, 그리고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순간 또 머리를 싸매고 별의 별 생각을 다 해야한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너에게 호기심을 가졌고, 너에게 다가갔고, 너에게 내 마음을 주었고, 너를 생각하면서 하루를 보냈고, 너를 사랑했고, 또 외로웠고, 죽고싶었고, 인생에 지루함과 허무함을 느끼다가 또다른 너에게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왜? 

아무리 물어보고 답을 찾아 헤매도 어느 곳에서도 확실하게 설명된 말을 찾을 수가 없고 속시원한 이야기를 들을 수가 없다. 

연애니 사랑이니, 불확실한 미래와 닮아있다. 답을 알아내기는 커녕, 한치 앞도 정확히 내다볼 수 없다. 

 

나를 사랑해다오! 

무슨 이유때문에? 

내게는 일반적이고 초라한 이유밖에 없다. 

내가 너를 사랑하니까..